[2023년 4월]‘증인’ 만나다 엎드리다 전하다 - 故 정필도 목사 소천 1주기


무릎의 목회자

지난해 3월 21일 오후 4시 34분.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한국교회의 거목이었던 정필도 목사가 소천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급성폐렴으로 진행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갑작스런 소식에 부산 수영로교회는 물론 많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말씀 중심의 교회, 은혜 중심의 교회, 선교 중심의 교회’라는 목회 철학으로 36년간 부산의 복음화에 힘쓴 정필도 목사는 특히 해운대 백사장에 20만 명의 성도가 모인 기도회 등 국내 대형집회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CTS부산방송이 문을 연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CTS부산방송 이사장으로서 그 역사의 중심에 항상 서 있었습니다.


CTS 부산방송 사옥이전 감사예배 & 비전선포식 (2021.7.8)
“2020년 초 CTS부산방송 지사장으로 발령받아 이사장이신 정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언제나 따듯한 격려와 기도, 그리고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셨어요. 정 목사님 덕분에 마음껏 사역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번 1주기 추모행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님들이 ‘정 목사님을 세우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고 종국에는 그분의 증인된 삶을 회고하며 우리 모두가 증인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 김광득 CTS부산방송 지사장

1975년 수영로교회 개척 이후 2022년 3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의 발자취가 담긴 다큐멘터리 ‘증인, 만나다 엎드리다 전하다’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정필도 목사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범호 장로를 통해 만난 하나님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의 한 허름한 판잣집.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 신문배달과 아이스크림을 팔며 어머니를 도왔던 어린 정필도 목사는 창신초등학교에서 만난 짝꿍 이범호 장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집에도 오고가며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제가 다니던 창신교회에 같이 가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기쁘게 받아줬어요. 그리고 정 목사는 6학년 때 이미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죠. 그 이후로 반 아이들을 상대로 기도와 전도 운동이 시작됐어요. 그게 중학교 때였습니다.”
- 이범호 장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거듭난 정필도 목사로 인해 그의 가정에도 복음의 열매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정 목사’로 불렸던 그는 일명 엘리트 코스라고 불리는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대학교까지 입학하게 됐습니다. 서울대학교 졸업 이후 바로 신학교에 입학하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청년 정필도. 주의 종으로서 세상을 섬기고 싶었던 그의 오랜 바람이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목회자는 영혼을 품고 우는 사람이다. 예배당을 눈물로 채우는 사람이다.” 
-故 정필도 목사 책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 중

신학생으로 교회를 개척해 눈물로 교회를 일으킨 정필도 목사. 이후 서울 신현교회에서도 중고등부 사역을 하며 3개월 만에 60명에서 2백 명이 넘는 부흥의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박신실 사모와 함께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더욱 더 하나님 나라 확장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결혼 이후 군목으로 사역하며 공군 역사상 최초로 전 장병 합동 세례식을 거행한 후 약속의 땅,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수영로교회 제 1호 개척교회 - 용당교회 설립예배 (1978) / 사진제공 수영로교회

구성전 부지 확장을 앞두고 성도들과 함께 예배 드리는 故 정필도 목사 (1983) / 사진제공 수영로교회

하나님 앞에 엎드리다

“주께서 하실 일이 분명히 있으시기에 장로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서울로 가려는 나의 발목을 잡고 주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주님께서 다 이루실 것이다.” 
- 故 정필도 목사 책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 중

복음의 불모지였던 부산, 연고도 없던 부산으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정필도 목사. 1975년 군복음화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부산 초량교회의 정태성 목사의 사업장 강당에 몇 가정이 모여 수영로교회의 첫 출발인 선교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입당예배를 드린 이후 단 하루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수영로교회는 개척 4년 만에 교육관도 세우며 모든 세대가 모이는 교회가 됐습니다. 그렇게 부산 복음화의 마중물이 된 수영로교회는 1991년 ‘익투스’라는 이름의 부산복음화대회를 개최하며 부산 시민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서울 분이었는데도 부산을 사랑하셨고 목회하는 도시에 대한 복음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꿈이 굉장히 강하고 구체적이었어요. 지금도 부산 안에서 교회 연합이 강하게 일어나고 성시화 운동이 살아있습니다. 원로 목사님이 가지셨던 헌신이 열매를 거둔 것이죠.” 
- 수영로교회 이규현 담임목사

수영로교회 이규현 담임목사와 수영로교회 전경



첫 예배를 드린 지 26년 만에 새 성전을 건축한 수영로교회는 IMF라는 심한 난관에도 끄떡없었습니다. 오히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매주 재정이 흑자로 유지되는 기적이 펼쳐지며 복음 전파의 정신, 선교 중심의 교회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불교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부산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내 소원’이라고 말했던 정필도 목사는 매순간 전도의 불을 지폈습니다. 1985년 수영로교회 청년회가 부산복음화대성회를 이끌며 복음화의 물꼬를 터트렸고 이후에도 꾸준히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며 복음화에 앞장섰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이 먼저 거룩해지지 않으면 절대 부산의 성시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부산이 성시화됩니다.” 
- 故 정필도 목사(2000년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발대식

2000년 6월에는 부산성시화운동본부를 설립하며 목회 인생 2막을 펼친 정필도 목사. 특히 2014년 해운대 해변을 그리스도인으로 가득 채운 대규모 기도회는 민족 부흥의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2014년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2014 해운대성령대집회'의 모습 / 사진제공 수영로교회
“원로목사님이 처음 교회를 시작하셨을 때 이름이 ‘선교교회’였습니다. 그만큼 목사님의 가슴엔 선교가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로 계실 때도 선교를 많이 하셨지만 은퇴 이후에 더 활발해졌습니다.”
- 수영로교회 이규현 담임목사

2011년 ‘목회가 행복했다’고 고백하며 36년간의 목회 생활을 마치고 수영로교회를 이규현 목사에게 위임하고 은퇴한 정필도 목사. 이후 해외 목회자를 훈련시키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교회 지도자(목회자, 신학생) 훈련사역’ 등 해외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022년 3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그가 세계 곳곳에 심어놓은 복음의 씨앗이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무엇으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하나님을 떠나있기 때문에 그래요.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살고 나무는 땅에 심겨져야 사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 故 정필도 목사의 마지막 주일 설교 중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기에 누구보다 행복한 목사로 살았던 정필도 목사. 참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인생을 통해 보여준 그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모든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증인된 정필도 목사의 인생을 통해 진정한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적당히 생각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서 지난 과거의 살아온 것보다
열 배 이상 열매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더 놀라운 열매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능력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그리스도의 선물이
능력의 성령의 종이 되어서
더 놀라운 우리 모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확신 있게 선포합니다.” 

- 故 정필도 목사의 유언 기도